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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해석

사물에 귀 기울이기: 흔적을 마주한 얼굴

여성의 얼굴이 작고 밝은 형태들을 향하지만 어두운 구름이 사이를 가로막는다. 추정한 이야기보다 보이는 거리의 구조가 중요하다.

ASO-0125, 아우구스토 살바토레 오포의 작품, 아카이브 목록명 L’ascolto delle cose: 왼쪽 여성의 옆얼굴, 가운데 어두운 얼룩, 오른쪽 작은 밝은 형태; 기법 미확인

비평적 읽기

《L’ascolto delle cose》 작품 기록은 크기를 35 × 25 cm로 밝히지만 연도와 제작 기법은 정하지 않는다. 제목은 아카이브의 목록상 명칭이며, 작가가 쓴 말이라는 문서상의 증거는 없다. 사진 속 회색 이미지에는 식별 가능한 세 영역이 있다. 왼쪽에서는 밝은 여성의 옆얼굴이 오른쪽을 향하고, 가운데에는 가장자리가 흐린 어두운 구름이 뭉쳐 있다. 오른쪽의 더 균일한 회색 장에서는 작고 하얀 모티프들이 나타나며, 일부는 매달린 형상이나 작은 꽃 장식처럼 보인다. 얼굴과 이 사물들 사이에 곧장 이어지는 길은 없다.

얼굴은 시각적인 덜어 내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주변의 회색과 점으로 된 조직이 비교적 밝은 공간을 남겼기에 이마, 코, 턱을 읽을 수 있다. 머리카락은 머리 옆으로 흘러내리지만 여러 곳에서 선이 끊기거나 표면의 입자에 섞인다. 어깨는 왼쪽 가장자리에서 뚜렷한 호를 그린 다음 중앙으로 갈수록 윤곽을 잃는다. 빈 배경 앞에 따로 놓인 초상이 아니라 회색 물질이 이미 통과하고 있는 존재다.

가운데 얼룩은 모든 공간 관계를 바꾼다. 안정된 윤곽이 없으므로 여성과 사물 사이에 놓인 하나의 물체처럼 보이지 않는다. 위쪽으로 퍼지고 안개 같은 흐름으로 아래로 내려오며 가는 선들이 통과하게 한다. 그 무게는 주로 명암에서 생긴다. 얼룩을 중단이나 거리, 심지어 시선의 흐려짐으로 읽을 수 있지만, 어느 말도 실제 사건의 문자 그대로의 묘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움직이는 듯하면서 불투명한 얼룩의 형태 자체가 옆얼굴에서 오른쪽으로 끊김 없이 읽어 가는 일을 막는다.

오른쪽 영역의 작고 밝은 모티프들은 어두운 간격을 두고 주로 하반부에 흩어져 있다. 어떤 것은 넓은 끝을 단 줄기 같고, 어떤 것은 거의 꽃 모양으로 닫힌다. 위쪽에는 또 하나의 형상 또는 존재를 암시하는 아주 희미한 윤곽이 보이지만 명확한 서사적 역할을 줄 만큼 분명하지 않다. 표면에 그어진 비스듬한 선들은 영역의 경계를 따르지 않고 가로지른다. 덕분에 종이 전체가 흔적이 기록되는 하나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관심은 여성에서 흔적으로 옮겨 갔다가 관찰자인 그녀의 자리로 돌아온다.

비평적 쟁점

목록명은 듣기를 암시하지만 눈에 보이는 행위는 주로 얼굴의 방향이다. 여성은 오른쪽을 향한다. 사진에는 소리나 말의 명백한 징후가 없다. ‘듣기’는 인물의 유보된 태도, 그리고 작은 형태를 주의 깊게 보라는 이미지의 요청을 가리킬 수 있으나, 화면에 그려진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읽는 데 이 구별은 결정적이다. 작품의 힘은 작은 이야기의 해답이 아니라 장애물과 단서를 마주하는 시선의 지속에 있다.

크기의 차이도 긴장을 더한다. 옆얼굴은 종이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인체의 특징을 지닌다. 오른쪽 모티프들은 작고 흩어져 다른 이미지에서 오려 낸 조각처럼 보인다. 가운데 구름은 크기만 균형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앞에 놓인 물건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작품의 평면 자체에 속한 시각적 퇴적을 보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모호함은 표식의 독립성을 지킨다. 각 조각은 알아볼 수 있는 추억의 상징이 될 필요 없이 자체의 형태로 읽힌다.

표면에는 점으로 된 조직, 흐린 구역, 가는 선, 대비로 만들어진 밝은 형태가 있다. 그러나 기록은 재료와 기법을 정하지 않는다. 사진만으로 인쇄 과정을 규정하거나 실제 작업 단계의 물질적 순서를 세우는 것은 지나치다. 섣부른 기술적 진단 없이도 정확한 독해는 가능하다. 왼쪽에는 조밀한 입자가, 중앙에는 퍼진 회색이, 오른쪽에는 어두운 장과 작은 흰 틈 사이의 더 뚜렷한 대비가 우세하다. 이 차이만으로도 시선이 움직이는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종이는 크기가 같고 마찬가지로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Adamo ed Eva》와 대화를 이룬다. 두 작품 모두 사람을 단색의 그래픽 조직 안에 놓는다. 다만 비교 작품에서는 두 누드가 수평선의 장을 사이에 두고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는 분명한 옆모습 하나가 구름 너머의 먼 사물 또는 기호들의 무리를 마주한다. 제작 순서나 연작 관계를 추론할 수는 없다. 이 비교는 가까운 시각 언어 안에서 관계를 만드는 두 방식을 가늠하게 한다.

평가

《L’ascolto delle cose》의 성격은 통일된 독해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다. 얼굴을 곧 알아보고 그것이 향하는 듯한 사물을 곧 찾지만, 중앙의 얼룩이 둘 사이의 연속성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작품은 분리된 사이에 머물도록 요구한다. 이 멈춤은 명확성의 결핍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분위기 효과로 보일 수도 있는 회색 영역에 무게를 준다. 여기서 그 영역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관계가 놓일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단단한 장벽이 되지는 않는다.

옆모습의 질은 몇 가지 이행에 달려 있다. 얼굴의 상대적인 흰색, 코와 입의 최소한의 묘사, 머리카락 선과 어깨의 호가 그것이다. 지나치게 완결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인물은 자신을 떠받치는 표면에 여전히 열려 있다. 오른쪽의 작은 형태들은 명암 차이로 반짝이며 하나씩 살펴보게 한다. 오포는 주요한 인간 주제와 부차적인 세부 사이에 너무 쉬운 위계를 세우지 않는다. 얼굴은 이미지로 들어가는 길을 열고, 조각들은 나가는 길을 늦춘다.

《Vertigine urbana》와 비교하면 선과 표식 속에 잠긴 몸에 대한 관심이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곳의 장면은 건물, 물고기, 교차하는 방향들로 열리고 관심은 여러 초점으로 흩어진다. 반면 《L’ascolto delle cose》는 넓은 명암 덩어리와 중앙의 중단으로 작동한다. 두 카드 모두 연도를 기재하지 않으므로 이 차이를 시간상의 연속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어렴풋이 암시된 인물의 서사적 밀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작품군에서 이 종이의 가치는 절제된 불확정성에 있다. 영역들은 완전히 융합하지 않고, 작은 표식은 사물 목록이 되지 않으며, 희미하게 암시된 두 번째 존재도 장면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미지는 열려 있지만 막연하지 않다. 옆얼굴과 구름, 밝은 모티프가 시선이 통과할 명확한 지점을 준다. 아카이브의 제목은 이렇게 붙들린 주의를 부를 말을 제공하지만, 평가는 눈에 보이는 구성에 근거한다. 작은 화면에서 한 사람과 그가 보는 것 사이의 거리는 설득력 있는 공간 구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