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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해석

Il ritmo sommerso: 작은 종이에 응축된 리듬

1972년 30 × 23cm 종이에서 황토색, 분홍색, 회청색, 갈색이 작은 원 주변에 응축된다. 형상은 끝내 확실한 정체를 갖지 않는다.

ASO-0094, 아우구스토 살바토레 오포의 1972년 종이 위 혼합 매체 작품, 30 × 23cm; 황토색, 분홍색, 회청색, 갈색이 얽힌 이미지; 아카이브 목록명 Il ritmo sommerso

비평적 읽기

Il ritmo sommerso 작품 기록은 제작연도 1972년, 종이 위 혼합 매체, 크기 30 × 23cm를 적는다. 이미지의 따뜻한 여백에는 종이의 바탕색이 남고, 칠은 가장자리까지 늘 닿지 않는다. 반대로 중앙은 관계로 빽빽하다. 넓은 회청색 곡선이 오른쪽 위에서 내려오고, 황토색·분홍색·갈색 덩어리가 왼쪽과 중간에 모인다. 가운데 가까운 작은 원형 핵이 기울어진 면들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작은 크기가 단순한 구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환이 한 화면에서 공존해야 한다.

색은 투명한 곳과 더 짙게 쌓인 곳을 번갈아 보인다. 황토색은 왼쪽의 먼지 낀 분홍색을 뚫고 떠오르는 듯하고, 중앙 사선 띠의 회색은 푸른색으로 차가워지며, 갈색은 원 주위와 짧은 어두운 자국 근처에 모인다. 빛은 그려진 광원이 아니라 드러난 종이와 옆 색을 완전히 덮지 않는 물감의 효과다. 검은 윤곽은 선택적으로 쓰인다. 일부 곡선을 표시하고 면을 대각선으로 자르다가 끊어져 눈이 형태를 이어 가게 한다. 깊이는 알아볼 만한 원근법이 아니라 짧은 겹침으로 세워진다.

몇몇 부분은 형상을 찾게 한다. 왼쪽의 곡선과 얼룩은 사람의 옆얼굴 같고, 아래쪽의 푸른 형태와 그 위의 반복되는 호는 작은 존재를 암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실한 식별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른쪽의 푸른 부분은 사물, 벽, 또는 회화적 면으로 읽힐 수 있고, 중앙의 따뜻한 원은 이름 붙일 대상보다는 시각적 축으로 더 잘 작동한다. 작품은 알아봄과 알아봄의 상실 사이에서 시선을 계속 움직인다. 아카이브가 붙인 이름은 표면 아래 남는 무언가의 인상을 담지만, 그것을 기록된 소재로 바꾸지는 않는다.

구도는 방향의 차이에도 의지한다. 위에서 뾰족한 형태와 사선이 내려오고, 양옆으로 더 느린 곡선이 열리며, 아래의 작은 푸른 부분은 내려가는 흐름을 잠시 멈춘다. 밝은 여백은 중앙의 얽힘이 불투명한 덩어리로 닫히지 않게 한다. 오른쪽 아래 보이는 서명과 날짜는 마침내 눈을 실제 종이의 크기로 되돌린다. 멀리서 힘을 발휘하도록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여러 번 돌아보게 하는 표면이다. 가능한 형태 하나를 알아보는 순간 다른 선이 그 경계를 바꾼다.

비평적 쟁점

중앙의 밀도는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면서도 생산적인 문제다. 좁은 공간에 많은 덩어리가 겹쳐 있어 따뜻한 원이 주위의 수많은 선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약한 중심처럼 보일 수 있다. 눈은 왼쪽 여백에서 중앙으로 갔다가 오른쪽의 큰 회색 곡선에 이끌려 벗어난다. 최종적인 위계를 찾지 못한다. 또렷한 형상을 찾는 사람에게는 힘든 읽기일 수 있다. 형식 관계를 보는 사람에게는 바로 이 어려움이 종이가 여러 가설을 열어 두는 방식이다. 화면은 면, 몸, 기호의 충돌을 풀지 않고 압축한다.

「Il ritmo sommerso」는 아카이브의 목록 명칭이며 작가가 직접 붙였다고 확인된 제목이 아니다. 물이나 기억의 방향으로 읽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림이 해저나 자전적 사건을 묘사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기록은 종이 위 혼합 매체라 적지만, 개별 재료와 적용 단계를 열거하지 않는다. 사진으로 얇은 색층과 짙은 자국은 설명할 수 있어도 사용된 각각의 매체를 확정할 수 없다. 모호한 윤곽에 의미를 투사하기 쉽기에 이 구별은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형상들 사이의 시각 관계다.

같은 1972년 작품으로 기록된 Alfabeto nero와의 비교는 한 해에도 오포가 얼마나 다른 답을 냈는지 보여 준다. 거기서는 검고 밝은 형태가 해독되지 않은 체계의 기호처럼 촘촘한 세로 열에 놓인다. 여기서는 색이 더 다양하고 윤곽이 우세한 열 없이 응집된 구조에 녹아든다. 친연성은 무엇인가 뜻하는 듯하지만 안정된 암호가 되지 않는 파편에 대한 관심에 있다. 이것이 두 작품이 한 연작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종이가 모듈식보다 분위기 있는 구조를 택했다는 점을 뚜렷하게 한다.

또 하나의 한계는 구상적 읽기의 무게일 수 있다. 왼쪽 곡선을 곧바로 얼굴로, 푸른 부분을 사람으로 해석하면 다른 요소가 꾸며 낸 장면의 배경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모든 암시를 부정하면 이 종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긴장도 잃는다. 비평적 균형은 형태들이 지각의 실마리를 주되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검은 선은 동시에 나누고 잇고, 드러난 종이는 몸 주위의 공간인지 색면 사이의 쉼인지 가르지 않는다. 이런 유예는 도상학적 이름으로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다.

평가

작은 크기가 이미지의 야심을 줄이지 않는다. 오포는 30 × 23cm 안에 투명한 색층, 끊기는 윤곽, 따뜻한 강조점, 큰 차가운 면을 맞세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질은 여백이 빽빽한 중앙에 숨 쉴 틈을 주는 절도다. 색이 종이 전체를 채웠다면 얽힘이 더 무거워졌을 것이고, 중앙이 더 열려 있었다면 아카이브의 명칭을 납득시키는 압력을 잃었을 것이다. 종이는 빛의 영역이자 팽창의 물리적 경계로 구도에 참여한다. 가까이에서는 형태의 목록만이 아니라 전환의 리듬이 느껴진다.

역시 1972년으로 기록된 Arcipelago della memoria의 작품 기록은 또 다른 비교를 제공한다. 거기서는 푸른색이 밝은 틈으로 갈라진 큰 파편들을 만들고 움직임이 더 넓게 펼쳐지며 색의 존재감이 우세하다. 반면 「Il ritmo sommerso」는 다른 색조를 중앙의 매듭에 모으고, 겹침에서 가능한 형상이 떠오르게 한다. 두 이미지는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의 진행을 기록하지 않는다. 같은 시기의 파편화와 통일을 공존시키는 두 방식, 즉 옆으로 펼치기와 가운데로 응축하기를 보여 줄 뿐이다.

이 작품은 오포에게 구상과 추상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한 번 선택되는 일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한다. 곡선은 몸처럼, 원은 사물처럼, 사선은 건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이미지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 안정적인 것은 색에 무게를 주고 쉼을 배치하며 서로 다른 방향을 만나게 하는 조직의 작업이다. 이런 면은 작가 전기에 기록된 시각 설계 감각과 대화할 수 있지만, 이 종이를 특정 그래픽 의뢰나 구체적 직업 경험에 연결할 근거는 없다.

평가는 표면이 지지하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아카이브의 제목은 즉각 드러나지 않는 리듬을 붙잡지만, 작품의 가치는 물의 은유에 달려 있지 않다. 좁은 공간에 많은 관계를 읽을 수 있게 유지하고 형태를 확실한 이야기로 닫지 않는 결정에 달려 있다. 1972년의 더 선명하고 연속적인 구성과 견주면 이 종이는 더 큰 망설임을 남긴다. 색과 선으로 조절된 그 망설임이 보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의 문턱을 탐색한 오포의 고유한 증거다.